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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미술사 이야기 르네상스 시대

free-spring 2024. 10. 8. 03:50

 

14세기~16세기까지 이탈리아 도시들이 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웠다. 피렌체, 베네치아, 피사, 밀라노 같은 도시에서는 이와 같은 경제력으로 자치권을 사들여, 영주나 교황의 간섭에서 탈피했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신도 사람처럼 표현하던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고. 예술과 문학에 나타난 이러한 새로운 기운을 르네상스라 한다. 특히 르네상스 미술은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펼쳐 나갔고,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전성기를 맞은 후 유럽 전역에 전달되었다.

역사적인 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동시에 길고 긴 중세 시대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세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알프스산맥을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은 이 운동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초 이 운동의 인문주의자들이 종교 개혁의 힘이 되어 교회 개혁과 학문적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하자면, 르네상스 또는 문예 부흥, 학예 부흥은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 또는 문화 혁신 운동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과학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세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끝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뜻한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사람 중심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였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75년 이후 많은 학자는 르네상스가 하나의 특정한 운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해스킨스 등과 같은 역사가가 ‘12세기 르네상스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불렀던 작업물들 때문에 생긴 발상이다. 지금은 이런 관점이 학자들 사이에 많이 보편화되어이탈리아 르네상스’, ‘영국 르네상스등 다양한 용법의 보기들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나타남으로 요즘에는르네상스 시기라는 말이근대 초기라고 대신 사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르네상스라는 말의 말을 만드는 힘은 점점 더 커져서 어떤 시기의 전성기나 대단히 번성하는 시기를 할렘 르네상스나 샌프란시스코 르네상스 등과 같이 은유적으로 르네상스 시기라고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르네상스를 시간적이나 지역적으로 확실하게 구별할 수는 없다. 여러 곳에서 점점 커지는 식으로 시작된 것이며 이처럼 중세가 언제 어디서 끝나는지도 이야기할 수 없다. 대게 시작된 장소로는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고 파악하고 있으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직접적으로 전해진 로마제국의 제도를 유지하며, 서유럽 지역보다 매우 더 풍부한 문화와 문명을 지녔고, 헬라어를 사용하며 고대 그리스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던 비잔틴제국, 동로마 제국의 무너짐이 있다. 이로 인한 같은 결의 사건들로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왔던 비잔틴 출신 학자와 기술자의 들어옴이 그들이 지니고 온 책자의 번역, 비잔틴 지역에서 빼앗아 온 문헌과 책들을 유통한 유럽과 중동 지역 출신의 대규모 책 거래상의 활동들이 큰 영향을 도래했다

초반에 르네상스를 대표한 인물로 피렌체 출신의 '단테'가 있다. 그는 정적에 의해 쫓겨나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대표작인 '신곡'을 완성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지옥, 연옥의 안내자로 등장시키는데, 영혼의 맑아짐을 통해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내용으로 고전문학과 가톨릭을 조화시켜 대서사시를 표현해냈다. 단테는 중세의 말, 고딕 시대로 분류된다.

이탈리아는 지리적으로 이슬람 세계, 비잔틴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하여서 서유럽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11세기 이후 상업의 발달과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도시의 활성화로 도시는 점진적으로 도시국가 형태의 자치도시가 되었다. 13세기 말의 경제성장기에는 사회계층이 격변하면서 특유의 시민문화가 만들어졌는데 도시국가는 그 특성상 고대의 도시국가와 유사한 점도 있어 로마법이나 정치제도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와 같은 조건들은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단테보다 나중 시대의 사람인 페트라르카는 로마 제국 시대에 사람이 최고의 것에 성공해 얻었고 그 이후 점점 부패하여 중세 어둠의 시대까지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를 종교적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발전과 나아감으로 간주했으므로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을 또다시 새롭게 발견하여 "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전문헌을 모으고 라틴어로 시와 책을 쓰다가 이와 같은 식으로 고전 교양을 모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사색하는 방식을 '인문주의'라고 불렀다. 그는 속어로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옛것을 보고 배우는 태도는 이후의 예술, 과학 등 여러 가지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페트라르카는 '리비우스'의 역사와 '키케로'의 도덕철학에 관심을 가졌고, 태초의 인문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화 분야 속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조토'이다. 그는 시공간을 다루는 데 있어 고대의 관례를 끌어다가 사용하였다. 법률에 있어서는 '볼로냐 대학'을 기반으로 '로마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했는데 그 체계적인 틀을 만든 사람은 '바르톨루스'.

르네상스의 시작점을 오스만튀르크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1453)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그것은 대포와 화약이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온 전환점이 된 전쟁이었고 동로마 제국, 그리스 학자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들을 가지고 로마로 도망쳤다. 이들은 이탈리아에 새로운 기운을 주었으며 유럽의 오래된 종교적 질서가 파괴되는 것에 보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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